11월 29일, 판교박물관 전통 인장(도장) 체험 현장을 찾았다. ‘돌에 그린 한글 꽃’이 오늘 수업의 제목이다. 먼저 도착한 수강생들은 책상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체험 도구들을 보고 하나 둘 질문을 시작했다.
“이 돌은 뭐예요?” “중국의 요녕지방에서 나오는 요녕석이에요. 돌이 물러서 글자를 새기기 좋아요” “선생님들은..?” “저희는 서예를 전공했어요. 글자를 새기는 전각은 서예의 한 분야예요.”
약속한 체험시간이 조금 지나 수업이 시작됐다. 먼저 인장 만들기에 대한 간단한 이론 수업이 있었다. 동양 인장의 윗부분에는 신분에 따라 용, 호랑이, 거북이, 사자 등 다른 모양을 새겨 넣었다. 용은 황제, 왕은 거북이를 넣었다고 한다.
글자를 새기는 방법에는 양각과 음각이 있다. 양각은 글자 부분이 아닌 나머지 부분을 새겨 인장을 찍으면 글자가 빨갛게 나타난다. 음각은 글자만을 새겨 인장을 찍으면 글자가 하얗게 찍힌다. 일반적으로 백문이 쉽고 빨리 새길 수 있다.
▲ 돌을 틀에 꽉 맞게 끼워야 한다 © 비전성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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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강생들은 각자 어떤 방법으로 글자를 새길지 선택하고 체험을 시작했다. 돌이 흔들리지 않게 틀에 맞춰 꽉 조였다.
김정환 강사는 “인장에 글씨가 꽉 차고 굵고 반듯하게 쓰는 게 새기기 좋다”고 했다. 하지만 새기고자 하는 글씨를 돌에 쓰기가 어려운 것 같다. 망설임이 느껴진다.
글자의 모양을 정하고 마침내 돌에 글씨를 쓰고 칼을 잡고 새기기 시작했다. 도장을 망칠까 불안한 마음을 다독이며 칼을 쥔 손을 움직였다. 모양에 맞춰 새기기 어려운 ‘ㅇ’부분은 선생님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글자는 칼을 잡는 방법에 따라 굵고 깊게 파이기도 하고 세밀하게 표현되기도 한다.
이미숙(은행동) 씨는 “글씨를 새기는 게 제 맘 같지가 않아요. 돌을 깎으며 마음을 수양하는 것 같다”며 웃었다. 인감도장을 바꾸려고 이번 체험에 참가했다고 한다.
홍경희(은행동) 씨는 이번에 만든 인장을 열 살 아들에게 생일선물로 줄 예정이라고 했다. “은행에서 서명하지 말고 도장 가져가라고 하려고요.”
이영희(서현동) 씨는 “비전성남을 통해 정보를 얻었어요. 외국에 사는 손주에게 선물로 주려고 해요. 칼이 조심스러웠지만 생각보다 재밌어요”라며 이런 시간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돌에 글씨를 새기고 인주를 묻혀 인장을 찍는 시간. 수강생들의 인장이 하나하나 예쁜 꽃으로 피어났다. 걱정하던 마음이 즐거움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수강생들의 집중과 몰입이 꽃을 피워낸 것이다. 전통 인주를 묻힌 도장이 오래오래 피어 있을 빨간 꽃, 하얀 꽃을 찍었다. 전통 인주는 지금의 인주와 달리 그 색이 긴 시간이 지나도 그대로 남는다.
사람의 기운이 느껴지는 수업이었다. 수강생들이 체험을 하는 동안 가득한 열기와 몰입의 기운이 마음을 차분하게 하면서도 사람 한 명 한 명을 생각하게 하는 힘이 있었다. 무언가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은 요즘 짧은 시간이지만 몰입해 체험하며 수강생들은 즐거워하고 만족스러워 했다.
▲ 엄지손가락이 닿는 부분에 넣은 무늬 © 비전성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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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교박물관에서는 2015년부터 직장인, 일반 시민 단체를 대상으로 신청 받아 인장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해왔다. 올해는 평생학습원과 연계해서 비문해자, 홀몸노인 단체를 대상으로 해서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다.
2018년에도 단체를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번 체험은 문화가 있는 날을 기념하여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개별 접수를 받았다.
취재 박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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